‘미트탐구생활’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고기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콘텐츠입니다.

고기는 언제부터 먹었을까요?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의 조상 호미닌은 동물의 골수와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날카로운 도구로 고기를 자르다가 동물 뼈에 남긴 흔적이 그 증거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 사냥 그림으로 손꼽히는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보세요.

*울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청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이 그림에는 ① 작살 맞은 고래, ② 함정에 빠진 호랑이, ③ 배를 타고 고기 잡는 어부, ④ 두 손을 얼굴에 모으고 신에게 고래를 보내줄 것을 간절히 바라는 주술사의 모습 등이 생생합니다. 재밌는 점은 그림에 등장한 동물이 모두 덩치가 크다는 것이에요. 현재 인류보다 더 체구가 왜소하고 도구도 마땅치 않았을 텐데 왜 큰 사냥감을 노렸을까요? 사냥하기 힘들어도 한 번에 많은 지방과 고기를 얻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식량은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죠. 자연히 오래 두고 먹고자 고민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암각화가 그려지기 훨씬 이전인 구석기시대부터 호미닌은 고기 저장 방법을 물색했습니다.

소중한 고기를 저장해 볼까?!
숙성의 발단, 본능

고기를 저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일까요? 그 흔적은 40만 년 전 죽은 들소에서 발견한 게 처음이에요. 고기를 분석하다가 건조한 사실을 밝혀낸 거죠. 그로부터 30만 년이 흐른 시대에는 고기를 숙성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먹다 남긴 고기가 맛있어진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호미닌인이 고기를 본격적으로 구덩이에 넣고 묻어 냉동해 발효시켜 먹었거든요. 그들은 고기 내 미생물이 활동하면서 맛 물질을 활성화한다는 과학적 지식은 몰랐어도, 동부·북부 유럽의 추운 날씨가 냉장고 역할을 해 고기에 풍미를 더하는 걸 육감적으로 알았어요.

구덩이에서 고기 숙성 중...

이후 인류가 현대인으로 진화하는 동안 고기를 건조 숙성해 저장하는 기술도 점차 고도화돼요. 서양에서는 이집트에서,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고기에 소금을 첨가하거나 육류를 건조하거나 훈연해 저장했어요. 나아가 가공품을 만들어 보관 기간을 늘리기도 했죠. 5000년 전 바빌로니아 남부에 발상한 수메르 문화에서는 소시지를 만든 증거가 발견됐고 기원전 600년경, 고대 중국과 그리스에서도 소시지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요. 창자에 소금, 피와 섞은 고기 반죽을 채워 맛과 유통 기한을 늘리니 일석이조였죠. 고기를 더 오래 먹고자 한 본능이 오늘날, 고기를 건조 숙성하는 드라이에이징의 시초인 셈이에요. 숙성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 고안한 방식일 뿐 아니라 우리 전통 음식의 고유한 기법이기도 해요.

소시지 맛있겠다...
선조의 지혜로 건조해 만든 과메기

과거 겨울철 경북 포항 앞바다는 청어가 풍어라서 배부르게 먹고도 남아 물고기를 저장해야 했어요. 과메기는 포항 지역민이 방법을 강구한 결과죠. 조선시대 후기 학자인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만물 편에서 “연기로 훈증하여 햇볕이 드는 창에서 건조한 것을 연관목(煙貫目)이라고 이름한다. 관목은 건청어의 속명이다”라고 기록했어요. 과메기는 청어 눈을 조리대로 꿰어 부엌 창에 매단 후 밤에는 차가운 기온에 얼리고 낮에는 아궁이 연기와 열기에 녹이기를 반복하며 반건조해 완성해요. 그냥 먹어도 쫀득쫀득한 데다 보존 기간은 길어 임금에게도 진상했죠.

*<오주연문장전산고> ⓒ서울대학교
*<오주연문장전산고> ⓒ서울대학교

현대에 들어서며 건조 방식은 달라졌어요. 영일만 기후 특색을 이용해 고기를 바닷바람에 말리고, 1960년대에는 어획량이 감소한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죠. 영일만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싼 지형이라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북서풍과 만나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고, 일교차 커서 청어와 꽁치를 자연히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요. 그 과정에서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핵산인 IMP, AMP 등이 활성화해 과메기 특유의 풍미가 높아지는 거죠. 현대의 과메기는 포항의 자연이 만든 온도, 습도, 풍속 덕이에요.

AMP, IMP
습식 숙성과 닮은 발효 숙성한 김치

우리 고유 음식인 김치도 겨우내 채소를 섭취하고자 개발한 저장 음식입니다. 겨울엔 채소가 나지 않으니 오래 두고 먹을 방법을 고안한 거예요. 흙으로 만든 항아리에 김치를 담은 후 땅에 묻는, 전통적인 김치 보관 방법에서 온도, 기간, 공간은 숙성의 중요한 요소예요. 먼저 항아리 내부를 고춧대, 고추씨, 닥종이를 태운 연기로 소독해 미생물 번식을 예방하고요. 그다음 양념한 배추를 단단히 눌러 넣은 후 우거지를 덮고 독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 공기와의 접촉을 막아요. 김치가 잘 익게 하려면 얼지 않으면서 시지도 않게 해야 하는데, 적정 온도에서 4~6주 이상 보관하는 게 중요하죠.
저장하는 동안 소금에 절이고 젓갈, 고춧가루로 양념한 배추에서는 발효 작용이 일어납니다. 소금이 유해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 고추, 젓갈, 마늘 등이 김치를 발효하면서 젖산균의 번식을 도와 독특한 맛과 향이 생성하거든요. 선조는 슬기로운 숙성 방법으로 채소를 장기간 싱싱하고도 맛있게 섭취했습니다.

4-6주 이상 보관 → 발효작용, 고춧대, 고추씨, 닥종이를 태운 연기로 소독하고 양념한 배추를 단단히 눌러 넣은 후 우거지를 덮고 무거운 것을 올린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음식에 진심이었습니다. 건조, 숙성, 발효가 음식에 맛을 깃들게 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으니까요. 놀랍게도 선조의 숙성하는 원리는 고기를 숙성하는 원칙과도 닮았어요. 온도, 습도, 풍속으로 감칠맛을 자아내는 과메기를 반건조하는 방법은 고기를 건조 숙성(드라이에이징)하는 방식과, 김치의 맛을 결정하는 숙성 요소인 온도, 기간, 공간은 고기를 습식 숙성(웻에이징)과 같거든요. 처음에는 낯설어도 숙성육을 맛본 누구나 만족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내재한 숙성 DNA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 <고기의 역사(지리와 문화의 관점으로 보는)>
    남기창, 이무하 외 2명 지음, 팜커뮤니케이션 출판
  • <건조조건에 따른 꽁치과메기의 핵산류, 유리아미노산의 변화>
    오승희, 김덕진, 1988
  • <김치 숙성 중 유리당의 변화> 1989
아는 만큼 맛있다!

호미닌에겐 자연이 숙성한 고기가 있었다면
현대인에겐 설로인이 P.R.O 숙성한 고기가 존재합니다.
설로인의 전문 기술(Originality) 미생물 생장은 막고(Prevent) 감칠맛은 높여 맛을 끌어올린(Raise) 숙성육을 만나 보세요.

안심에서도 정중앙 부위만 골라 살코기가 매력적인 샤토브리앙을 추천합니다.


목록으로
To Be Continued
EP. 02 무슨 냄새 안 나요?치즈향 나는 드라이에이징 고기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는 음식 취향도 특별한데요. 그가 즐겨 먹는 드라이에이징 고기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온도, 습도, 풍속만이 숙성의 성패를 가르는 게 아닙니다.